오, 이게 어쩐 일로 애교를 다 부리냐. 역시 너도 원래 주인이 훨씬 좋지? 옛다, 기분이다! (몸도 돌아왔고! 푸링도 기특한 짓을 해주겠다, 기분 좋으니 특별히 선심써서 푸링 한 번 안아준다.)
(힐긋 그 모습을 바라보며 토도도 걸어온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어젯 밤 불안하고 초조해하던 기색은 온데간데 없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뻔뻔스럽게 웃는 낯짝. 네 모습을 위아래로 훑는다.) 너도 돌아왔냐? 당연히 신나지, 너도 어지간히 신나보이는구만.
(얘기하는 내내 기분이 좋은지 푸링 꾹꾹이 중. 하지만 당사자가 당사자이다보니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이 주변 귀여운 여자애들이나 찾으러 가볼까.
야, 치즈 괴롭히지 마. (푸링 꾹꾹이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타박한다. 이럴 줄 알았지. 참 단순하다니까. 그런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라서 옅게 웃다가) .. 나.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름 신경써서 꾸민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힐긋 시선을 피한다.)
(네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푸링을 괴롭히다가 잠깐의 간극 후 들리는 대답에 그제서야 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간이 멈춘 듯 잠시 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네게 다가간다.)
아하,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열심히 꾸미셨나 했더니만. 자칭 귀여운 히메쨩,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드셨을까. (어느 새 제법 가까워진 거리에서 내려다보며 즐거운 듯한 얼굴로 웃는다.)
(얘는 맨날 이러네. 이제 와서 얼굴쯤 가까워진다고 쑥스러워할 만한 사이가 아니기에 네 볼을 살짝 꼬집는다.) 여행이잖아. 어제는 예쁜 옷도 못 입었는데다 제대로 쉬지도 못 했고.
(자칭이라는 말엔 제법 자존심이 상해서 입술을 오물거린다. 저거, 여자애들한테 된통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혼자 갈 거면 가라 가.
(딱히 쑥스러워하는 귀여운 반응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기에 네가 별 반응 없이 볼만 꼬집어도 웃고 넘겼다. 할 말이 없어 입술을 오물거리면, 어김없이 웃음이 얼굴이 걸렸다. 아, 나는 얘의 뚱한 표정이 왜 이리 좋은거지.)
아~ 알겠어, 알겠어. 가주면 될 거 아냐. 유성우 때부터 히메쨩은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네. (그리곤 일정표 잠시 보더니.)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냐?
.. 말은 똑바로 해. 어차피 너도 여기서 그다지 할 일 없으면서. 일정표도 지금 처음 보는 거지? (분명 또 저를 놀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맨날 나만 지는 장사잖아, 이거. 네 말마따나 자신은 의외로 혼자 있는 건 싫어하는 상정이었고, 옆에 두기에 가장 익숙한 사람이라곤 눈앞에 있는 이 얄미운 작자뿐이니 네 옷자락 끝을 눌러 쥔다.) 네가 제일 한가하니까, 그래서 부른 거야.
(곧이어 미리 생각해놨다는 듯 옷을 잡아당기며 핸드폰 화면을 보라고 한다.) 여기 가자. 기념품 가게인데, 오르골이나 악기 같은 것도 팔고- 인형도 있대. 종류가 많은가봐.
그야 물론이지, 너무 당연한 걸 묻네. 내가 일정표 같은 걸 성실하게 읽는 놈으로 보여? (뻔뻔스럽게도 말한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 흠, 거긴 꽤 괜찮네. (네가 보여준 화면을 잠시 바라보더니 곧 가자는 듯 고개짓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네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면 그걸 신호로 삼아 손을 감싸쥐듯 잡았다.)
이치노세 카즈야한테 내가 뭘 바래. (두 번 말하면 입 아팠다. 자연스레 쥐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푸스스 주근깨를 접어가며 작은 미소를 짓는다.) 웅. 가까운 데라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어. (콩콩. 제법 가벼운 발걸음.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며 가게의 리뷰를 살핀다.)
식기도 파네. 한 세트 정도 사서 집으로 들고 갈까? (보나마나 토끼 모양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날 갱생시키는 건 일찍이 포기하는게 네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잖냐.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다시금 뚱해진 표정을 보고 싶어지는 건 제 못된 성격 탓일까. 굳이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많이 먹는 편도 아니고 집에 널린 게 식기인데 뭘 또 사냐, 너 또 뭔 유치한 토끼 그려져 있는 걸로 사려는거지? (잠시 질색하는 얼굴이 된다. 그런 면에서는 취향은 서로가 전혀 달랐으므로.) 그런 걸로 꾸미는 건 네 방으로 끝내라, 가서 인형이나 사가던가. 너 아직도 침대에 인형 없으면 잠 못자잖아. (사실인지, 아닌지...)
누가 이기나 봐. 이건 장기전이니까. (어느 날의 미래에도 너는 제 옆에 있을 거라는 기정사실과도 같은 말. 너는 계속 바이올린을 연주할 테고, 나는 계속 셔터를 누를 것이다.) 유치하다니. 조그맣잖아. 귀엽잖아. (입술을 툭 내밀며 눈을 가늘게 뜬다. 막상 사 놓고 나면 항상 쓸모가 있는 물건이다, 식기는.)
지난번에 보니까 컵도 오래 써서 변색 됐더라. 바꿔줘야 해. (누가 들으면 제법 오해할 법한 대사들을 하며 사야 할 리스트를 줄줄 늘어놓는다. 곧이어 멈칫.) 인형도 사긴 살 거야.
(힐긋 시선을 피한다. 방에는 이미 널린 게 인형이었기에.) .. 네가 저번에 하나 가지고 놀다가 귀 뜯어 먹었잖아. 아, 다시 생각하니까 열 받네.
(네가 하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치는 것이 누가 보면 같이 산 지 50년은 된 노부부가 따로 없었다. 이어지는 타박에도 별 표정 변화 없이 그게 뭔 대수냐는 태도다.) 야, 그 정도로 뜯어질 인형이었으면 이미 수명이 다한 거니까 그냥 보내줘라. 바느질 좀 하니까 다시 멀쩡해졌더만. (곧이어 기념품 가게에 도착한다. 문을 열곤 먼저 들어가라는 듯 말없이 고개만 까딱인다.)
네가 반죽하듯이 자꾸 옆으로 늘렸다가 위로 늘렸다가 하니까 그러지. 바느질 자국이 선명한데, 그게 어떻게 멀쩡해? (작은 주먹으로 네 옆구리를 쿡 찔러보지만,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문이 열리면, 네 손을 잡아 이끌며 식기 코너로 직행한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니까.)
이거랑, 이거. (곧이어 무난한 디자인의 컵 세트에도 시선이 꽂힌다.) 카즈. 이거는 부모님들한테 드릴까? 아주머니랑 아저씨도 이런 거 좋아하시잖아. (보나 마나 선물 같은 건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을 거다. 이런 부분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그럼 그렇게 가지고 놀기 좋은 걸 내 눈에 띄는 곳에 두지 말던가. 네 방, 내 방 구분 없는 사이에 뭘 새삼스레 그래? (익숙한 듯 네 손을 잡고 순순히 식기 코너로 향한다. 컵 세트를 가리키는 네 모습을 잠시 보다가.) 우리 부모님한테도? 너 진짜 이런 것 까지 챙겨야 직성이 풀리냐.
(그러나 곧 컵을 슬쩍 바라보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그걸로 해, 내가 손 대면 괜히 이상한 거 산다고 잔소리 할 거 아니냐? 가끔 보면 니가 우리 부모님 자식같다니까.
왜 이렇게 우리 부모님한테 잘 보이려 하는거야, 너 다른 마음 있냐? (아닌 걸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짖궃게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은 제 장난스러운 성격 탓이다.)
노크는 하고 들어오래도 절대 안 들으면서. 곧 죽어도 본인이 잘났대지. (이번엔 주먹을 질렀던 옆구리를 조금 아프게 꼬집으며 베에, 혀를 내민다. 이내 네가 뭐라고 할 새라 모르는 척 조금 빠른 걸음으로 컵 세트와 몇가지 식기류를 집어든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들한테 그만큼 베푸는 건 당연하잖아. 너는 몰라도 아주머니랑 아저씨는 나 되게 좋아해. (다른 마음이 있냐는 말에는 아예 대꾸도 안하는 게 반응해주는 것도 귀찮은 모양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쇼핑을 마친 뒤 꽉 찬 봉투를 네 손에 끼워준다. 그걸 빌미로 가벼워진 손이 된 저는 예쁘게 저무는 노을에 얌전히 카메라를 들어 찰칵- 셔터를 누른다.) 예쁘다.
(당연한 듯 봉투를 받아들어 한 손으로 든다. 어느 정도 가게를 둘러 보고 나오면 어느 덧 선명한 노을빛이 눈동자에 담긴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다가, 카메라를 찍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운을 떼었다.) 이제 한 곳 정도 더 둘러보면 시간이 맞을 것 같은데, 어디로 갈거냐? 별 생각 없으면 케이블카는 어때.
(고개를 슬 기울인다.) 일반적인 케이블카와 달리 재밌는 소문이 있던데.
(그렇게 몇 차례 더 사진을 찍고는 너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렇게 렌즈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항상 그런 얼굴로 기다리고 있더라. 어쩌면 이 순간이 좋아서 굳이 굳이 손을 느리게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다. 천천히 다가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쪽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준다.) 거기가 아니라 이쪽이야, 바보 멍청아. (곧이어 너와 시선을 맞추며 조금 들뜬 얼굴로 입을 연다.)
갈래. 거기 야경 예쁘대. (사진 찍을 생각만 가득하다. 소문이라는 말에는 비죽 웃으며 함께 고개를 기울인다.) 고백해도 안 받아줄 텐데, 어떡하냐. (가끔은 네게 배운 장난을 써먹기도 한다.)
아, 그러냐. 반대였나. (네 말에 방향을 바꿔 머리를 정리하려다가, 네가 정리해주면 손길을 허락하듯 내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곧 이제 됐다며 몸을 한 발자국 뒤로 뺏지만.) 난 네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까 가자고 한 건데, 너 벌써 몇 발자국을 앞서 나가는 거야? (삐딱하게 서서 말하는 꼴이 제법 뻔뻔스럽다.)
그건 이 쪽도 마찬가지니까 걱정 마시지. 그리고 그런 말은 미리 자제하는 게 좋을 걸, 나중에 날 좋아하게 되면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하려고 그러냐. (장난으로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고 해서 설렐 사이는 아니었기에 가볍게 웃으며 받아치곤 앞서 케이블카가 있는 쪽으로 향해 걸었다.)
.. 우와, 짜증. 배는 더 기분 나쁘게 받아치네. (이런 류의 농담은 네게 당해낼 수가 없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하여튼, 얄미워 죽겠다니까.)
너 무슨 다른 시라유키 히메랑 만나는 거 아니야? 내가 땅을 치고 후회, 미쳤나 봐. (여전히 귀염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으나, 그럼에도 약간 들뜬 티가 난다는 건 너만 알 수 있는 일이다. 케이블카에서 볼 야경을 생각하며 종종걸음으로 너를 쫓아 손을 붙잡는다.)
같이 가. 거기 사람 많단 말이야.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된 저는 확신한다. 끽하는 사이에 관람객들에게 떠밀려서 종이 인형마냥 나풀댈 것임을.)